2023.04.09
출근을 하지 않으니 늦게 자고 일어난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텐데, 괜히 늦게 자고 싶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건가.
아침에 깨어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나진 못하겠다.
게으름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무과수님께 설레는 제안을 받았다.
TOKYO 책과 수관기피에서 선정한 앨범을 듣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처음, 네스트*에서 이야기를 발전시켰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무과수님 소개로 내윤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옅은 스케치였지만, 내윤님은 내용을 들어보시곤 네스트에서 진행해도 좋다고 흔쾌히 말씀하셨다.
그 뒤로 매주 이른 아침에 세 사람이 모여서 구체화하고, 색칠한 것이 '월간 음감회'가 되었다.
네스트 : 커피가 없는 찻집. 브런치 메뉴도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그로서리 스토어를 겸하면서, 내외부 전시/행사가 이어지는, 서촌에서 대단히 활발한 장소. 내윤님은 그곳의 주인이다.
3/23 네스트에서
오늘은 지난 몇 주 동안 준비한 '월간 음감회'가 있는 날이다.
전부터 이른 시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테스트를 했지만,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다.
새벽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
창밖엔 푸른 어둠이 깔려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다.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매일 다니는 길이 낯선 새벽의 분위기로 신비하게 느껴진다.
저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여명이 밝아온다는 것이다.
조용했고, 아침을 알리는 다양한 새소리가 많이 들렸다.
정신이 맑아진다.
역에 가니 사람들이 있었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치는 사람들.
다들 부지런히 살아간다.
오늘만큼은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전철이 아침을 향해 달린다.
집에서 보이는 풍경
벚꽃 다음은 철쭉
역 앞 도로
달리는 전철
연두빛 나무
잎이 덜자라서 나무 뒤 풍경이 비친다.
이른 시간이라 못 오시는 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자리가 가득 찼다.
오는 길 역에서 본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햇살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거나, 가져온 책을 읽거나, 기록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보냈다.
4/9 첫 음감회가 끝난 네스트에서, 2주 사이 산과 은행나무에 잎이 많이 자랐다.
무과수님, 내윤님의 능숙한 진행과 준비 덕분에 음감회가 잘 마무리되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거웠고, 매주 아침이 있는 하루를 보내서 좋았다.
다음 달엔 연두빛 풍경이 초록빛으로 변해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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