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5
여름, 베란다를 가득 채운 짐이 방까지 범람해서 포화 상태가 되었다.
베란다는 여름에는 장마, 겨울에는 결로로 벽과 바닥이 안전하지 못해서 계속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일하는 공간에 여유가 없으니,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방처럼 좁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인내심은 더위와 함께 한계에 다다랐다.
짐을 보관할 창고를 알아봤다.
창고 용도로 검색되는 매물은 크거나, 지하에 있거나, 멀어서 적합하지 않았다.
다음은 살고 있는 구역의 중개사무소를 직접 돌면서 사무실로 쓸만한 곳을 알아봤다.
명함을 10장 가까이 받았지만, 대부분 네이버로 미리 확인한 매물이었다.
큰 소득이 없던 차에 한 곳에서 일부러 올리지 않은 작은 상가가 있다며 보여주셨다.
집과 거리도 가깝고 임대료도 주변보다 낮은 작은 상가였다.
마음에 들어서 계약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현 임차인이 시설비 300만 원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가서 살펴봤지만, 어디를 봐도 300만원의 가치가 보이지 않았고, 100만 원도 많게 느껴졌다.
시설이라곤 벽걸이 에어컨, 낡은 싱크대 전부.
너무 비싸다고 말씀드리니 200만 원으로 낮추셨다.
그것도 비싸다고 말씀드리니 150만 원까지 내려왔다.
100만 원으로 말씀드리니 더는 내릴 수 없다고, 급하지 않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하셨다.
에어컨 외 시설이 뭐가 있냐고 여쭤보니 가벽을 세우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어쩌다 보니 옆 가게와의 사이까지 듣게 되었는데,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왔다.
직접 튼 벽의 원복 비용을 왜 내게 받으시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그렇긴 해도 주변 시세에 비해 세가 저렴하니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로드뷰로 봤을 때 가게는 둘로 나뉜지 오래되었다.
벽을 세우긴 하신 걸까?
옆가게에 여쭤봤다.
두 가게의 관계는 처음에 좋았으나, 현재 악화되어 터놓고 지냈던 벽 한쪽을 다시 막았다고 했다.
옆 가게는 내가 본 가게를 전부터 계약하고 싶어 했다.
그걸 알고 있는 현 임차인은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어서 한 부동산에만 조용히 가게를 내놓았던 것이다.
네이버 부동산에 등록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내가 떠나고 옆 가게 사장님이 현 임차인에게 가게를 내놓았는지 물어보셨나보다.
그걸로 한 번 더 마음 상하신듯 하고, 현 임차인도 기분이 상해서 내게 가게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고 부동산에 이야기 했다.
나는 그걸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들었다.
괜한 호기심이 일을 키웠다.
그래, 집 근처로 제한하지 말고 넓게 보자.
평소 좋아하던 동네, 괜찮을 것 같은 동네, 출퇴근하기 좋은 동네 등 인터넷으로 전부 훑어봤고, 딱 한 군데를 봤다.
독립문역 서대문 형무소 길 건너에 있는 오래된 주상복합으로 넓고 풍경이 예뻤다.
이날은 백파트장님이 동행해 주셨다.
넓이에 비해 저렴하지만 부담되는 세, 공동소유여서 세금계산서 발행이 안 되는 점, 위반 건축물 때문에 용도변경이 안되는 점, 그리고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위치를 이유로 포기했다.
아직 세상에 나갈 때는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을 잡고 박카스를 사서 가게로 향했다.
임차인은 날 보더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서 나가라고 했다.
함께 있던 아주머니들도 그러면 안 됐다고 한마디씩 더하셨으나 상황을 풀기 위한 과장된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기분이 풀어지셔서 계약하기로 했다.
부동산 사장님께는 시설비를 조금 더 낮출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최종 시설비는 140만 원이 되었다.
계약은 며칠 뒤에 했고, 가게는 그 다음 주에 받기로 했다.
필요 없는 건 놓고 가셔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약속한 날짜에 짐을 못 빼셔서 다음날 나가셨다.
넘겨받은 가게에는 책장 4개, 냉장고, 트롤리, 의자 몇 개, 전기난로, 싱크대, 벽걸이 에어컨, 빗자루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 벽걸이 에어컨, 난로, 빗자루를 남기고 나머지는 당근에 올렸다.
대부분 당근으로 나눔했고, 책장 1개와 냉장고는 옆 가게 소유라고 하셔서 돌려드리려 했는데, 나눔 해달라고 하셨다.
푹신한 단열 벽지와 오래된 장판부터 정리할 계획이었다.
책장과 싱크대를 옮길 때 바퀴 몇 마리가 나와서 놀랐는데, 그때는 1층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는 건 단열 벽지를 뜯다가 알았다.
가게를 둘로 나눈 벽 마감이 안 되어 스티로폼이 노출된 건 그렇다 치고, 평생 봐 온 바퀴보다 많은 바퀴를 봤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마쿠로쿠로스케가 한순간 흩어지는 것처럼 사방팔방 바퀴가 흩어졌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싱크대가 있던 벽은 축축했고 새카맣게 썩어있었다.
단열 벽지 때문에 통풍은 안 되고 틈은 많아서 바퀴가 살기엔 최고의 환경이었다.
이미 엎어진 물이다.
내 손으로 끝내야 한다.
속이 울렁거리는 걸 참고 단열 벽지와 그 안의 벽지를 모두 뜯어냈다.
다음은 장판이다.
땅따먹기 게임을 하듯 싱크대가 있던 구석을 향해 장판을 조금씩 잘라내 갔다.
마지막 남은 조각을 제거하기 전에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부동산 사장님과 임대인 어르신의 따님께 가게 상태를 보여드렸다.
결로인지 누수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작업자님을 소개해 주시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초배지와 곰팡이를 제거했다.
애초에 창고로 쓸 목적으로 힘과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려 했다.
쉽게 도배를 하는 것도, 천장을 그대로 두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지수의 설득으로 모두 제거하고 칠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1층을 창고로만 쓰기에는 아까우니까, 예쁘게 정리해서 커피도 내리고 싶다고 했다.
혼자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업체 견적도 받아봤는데, 가격을 듣고 나니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 땐 견적을 받으면 힘이 난다.
벽에 물을 뿌려 불리고 옆 가게 사장님이 빌려주신 껌칼로 초배지를 긁어냈다.
벽지가 있던 모든 면적에 손이 지나가야 해서 정말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가게가 작고 한쪽 벽이 스티로폼인 것에 감사했다.
며칠 걸려서 초배지 제거를 끝내고 나니 껌칼의 칼날이 둥글게 바뀌어 있었다.
벽 선반은 쓸까 싶어서 두었는데, 찝찝하기도 하고 너무 커서 뒤늦게 철거했다.
곰팡이 핀 벽은 곰팡이 제거제와 락스로 네 차례 닦고 최종 얼룩이 남은 부분은 껌칼로 파냈다.
이때부터 지수도 합류해서 며칠을 밤늦게까지 함께 고생했다.
벽 철거를 끝낸 다음은 바닥에 남은 접착제를 제거했다.
벽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철거에만 한 달 반이 걸렸다.
누수를 잡기 위해 작업자님과 함께 건물을 살폈다.
가게뿐만 아니라 2층과 3층 주인집 천장과 벽도 상태가 심각해서 작업이 필요했다.
탐지 결과 수도와 보일러 배관 문제는 아니었다.
옥상 방수가 깨진 것으로 보고 작업을 진행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고, 부탁을 듣고 바로 조치해 주신 것에 감사했다.
바닥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가면서 가구 크기를 잡고 배치를 해보았다.
처음에는 두 칸만 쓰겠다던 지수의 공간이 꽤 넓어졌다.
바닥 물청소까지 하고 체력이 고갈되어 한동안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가을, 어느덧 단풍이 들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도장까지 끝내야 한다.
스티로폼 벽에 합판을 대는 것, 전기공사, 도장 중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지인께 연락드렸다.
두 차례 견적을 내주시고 조언도 해주셨는데, 여유가 있으니까 큰 비용 쓰지 말고 직접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해보라고 하셨다.
합판 작업과 전기공사는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도장은 직접 하기로 했다.
동네에서 인테리어 목수를 찾을 수 없었다.
포스팅이 끊긴 블로그 하나를 찾아서 연락했는데, 다행히 가능하다고 하셨다.
합판을 대는 날, 상을 짜기에는 애매하고 공간이 줄어들어서 스티로폼 면에 합판을 붙이기로 했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지 않기로 하고, 혹여 합판이 넘어가지 않도록 상단에 합판을 걸쳐 덧댔다.
이제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계약할 때부터 이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기공사를 위한 견적을 동네 업체 몇 군데에서 받았다.
스틸파이프로 할 때와 CD관으로 할 때 가격 차이는 꽤 났다.
자잿값의 차이도 있지만, 스틸파이프로 할 경우 혼자서 하루 안에 작업을 끝낼 수 없는 이유로 두 배의 인건비가 책정되었다.
가구나 집기 배치가 확정되지 않아서 전기공사는 대략적인 비용 파악을 해두고 차차 준비하기로 했다.
도장에 앞서서 면 정리를 해야 한다.
박혀있는 못은 없는지, 남아 있는 초배지는 없는지 확인했다.
퍼티를 올리는 날 하교를 마친 조카에게 연락이 와서 가게를 보여줬다.
가까이 살고 있는 사촌 누나에게 가게를 준비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간이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지수, 조카와 함께 못 자국이나 패인 곳을 메웠다.
헤라 다루기가 익숙지 않다.
길을 지나가던 분이 보시고 방법을 알려주셨다.
저녁에는 사촌 누나와 형이 합판 올퍼티를 도와주셨다.
전기 공사를 하기 전에도 도와줄 수 있다고 연락을 달라고 하셨었다.
최근에는 교회도 지었다고 하셨다.
네 사람이 늦은 밤까지 작업을 했다.
지수랑 둘이 했다면 밤을 새울뻔했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셨다.
다음 날은 지수와 문제의 누수 벽 올 퍼티를 했다.
일반 퍼티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크릴 퍼티를 사용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엉성해 보여도, 멀리서 보면 제법 괜찮은 모양새다.
얼룩덜룩한 벽과 천장이 하얗게 정리된 것을 보니 뿌듯하다.
다음 날은 지수와 바닥, 창문, 출입문, 유리에 커버링 테이프를 붙이고 페인트칠을 했다.
힘들지 않고 결과도 바로 눈에 보여서 재미있게 작업했다.
롤러와 붓이 지나갈 때마다 예쁜 흰색이 되는 것을 보고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창문과 샷시는 칠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두었다.
바닥도 테라조 상태 그대로 두려고 커버링을 한건데, 벽이 너무 깨끗해서 이질감이 들었다.
결국 에폭시를 사서 바닥도 칠했다.
하루는 하도를, 다음 날은 에폭시를 올렸다.
레벨링까지 하는 건 정말 큰 일 같아서 넘겼는데, 이대로도 충분하다.
12월이 되기 전 도장까지 끝내서 다행이다.
겨울, 생각해 보니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수도도 해결해야 했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기온수기를 달아야 했고, 온수 디스펜서도 연결해야 한다.
유튜브로 온수기 설치 방법이나, 싱크대 수전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요한 부속을 사서 전기온수기부터 설치했다.
용이한 관리를 위해 앵글밸브도 달았다.
수전을 연결하지 않아서 테스트는 못 해봤지만, 특별히 신경 쓰이는 점이 없었다.
주방은 지수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구 중 가장 고민은 싱크대였다.
나중에 가져가기 애매한 가구여서 비용을 덜 쓰면서 해결하고 싶었으나, 마음에 드는 기성품이 없었다.
가정용 싱크대를 제작하자니 스테인리스 상판은 구식뿐이고, 인조대리석은 별로라고 했다.
상업용 싱크대는 지수 키에 맞는 제품이 없다.
제작하더라도 가게 내부 수도 위치나 배수구 크기 등 제한사항이 많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중고도 알아보면서 돌고 돌아 제작을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가게 맞은편에 싱크대를 만드는 가게가 있어서 사장님께 현장을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장님이 보시기에도 수도가 애매한 위치에 있고 배수구도 너무 크다고 하셨다.
높이를 최대한 낮춰도 80cm를 넘을 수 있다고 하셨다.
하부 장을 없애고 일부만 벽을 세우는 것도 가능은 하다고 하셨다.
이케아에서 원하는 일체형 상판 싱크볼 을 찾았다.
깔끔한 디자인에 스테인리스 소재였다.
사이즈는 둘인데 큰 사이즈가 더 저렴한 아이러니가 있었다.
설치 사례 등을 찾아봤는데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던 중 큰 사이즈 싱크대가 반값 할인에 들어간 걸 보고 일단 주문했다.
책상 다리처럼 다리만 만들면 될 것 같았다.
싱크대 가게에 가서 레퍼런스 이미지를 보여드렸다.
인터넷에서 재단된 목재를 주문하여 조립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목공을 배우신 백파트장님께 고민 상담을 했다.
필요한 목재와 장비를 갖고 있으니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얼마 뒤 백파트장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생겨서 기쁘게 도와드렸다.
나중에는 파트장님 사무실에 온수기 설치도 도와드렸다.
크리스마스 전에 백파트장님이 자재와 장비를 싣고 오셨다.
예상 이미지를 말씀드렸고, 즉흥으로 완성하기로 했다.
책상처럼 네 다리를 설치하기에는 한쪽 바닥이 튀어 오른 모양이라 안쪽은 벽에 고정하고, 바깥쪽에만 다리를 달기로 했다.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한 앵글을 준비해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하중이 수백 킬로는 되어보이는 꺾쇠여서 오버스펙 같다.
저녁부터 시작된 작업은 자정 가까운 시간에 위층의 민원으로 중단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다가 피해를 끼쳐 죄송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이어서 하기로 하고 일주일 뒤 싱크대가 완성되었다.
즉석에서 만든 싱크대지만 정말 튼튼하고 깔끔했다.
수전을 연결할 수 있게 상판 타공도 해주셨다.
다행히 온수기도 잘 작동한다.
오랜 숙제가 해결되어 후련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현장을 여러 번 봐주신 싱크대 가게 사장님께 죄송해서 케이크를 선물로 드렸다.
새해가 되었다.
이제는 전기 공사다.
작년에 여러 곳에서 견적을 받은 바람에 업체 사이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게 아닌가 싶은 걱정도 되었다.
원하는 느낌을 잘 이해해 주시고, 작업 보조를 해드리는 조건으로 비용을 조금 낮춰주신 분께 다시 연락드렸다.
사장님은 배치도가 바뀔 때마다 방문하여 어떻게 풀어나갈지 해결법이나 가능 여부를 이야기해 주셨다.
같은 동네여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감사했고 신뢰가 갔다.
스틸파이프로 하려던 것도 타협하여 당일 내 끝낼 수 있는 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원하는 전선관이 있다면, 따로 준비 해두어도 좋다고 하셔서 유연성이 있는 관 중에 최대한 곧은 관을 찾아 준비했다.
최소 주문 길이가 50M여서 남은 관은 사장님 드렸다.
스위치도, 전선도 원하는 것을 사두면 달아주신다고 하셔서 준비를 해두었다.
아침 일찍 만나 시작해서 점심도 먹고 해가 진 뒤에 끝이 났다.
작은 가게인데도 생각보다 할 게 많아서 하루를 꽉 채웠다.
작업 중 사장님의 아이디어로 고민을 해결하기도 했고, 작업 후 뒤늦게 해결법이 떠올라 아쉬웠던 것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다.
카페를 하기로 하고 맨 먼저 산 것은 온수 디스펜서고, 그것을 올려둘 목적으로 무인양품 선반도 사두었다.
선반에 디스펜서를 올려보니 불안정했다. 단독으로 온수 디스펜서를 올려둘 것이 필요했다.
마침, 당근에서 찾던 크기의 전시대를 발견하고 구매했다.
칠하니 새것 같았다.
오늘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유튜브로 설치 방법을 찾아보고 셀프 설치에 성공했다.
칠할까 말까 고민했던 창틀, 창문, 샷시를 하얗게 칠하기로 했다.
파사장님의 의견도 있었고, 톤을 맞추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았다.
창문에 있는 방범창 살을 제거했다.
답답함이 사라졌다.
이 가게의 매력은 작지만, 큰 창이 있고, 그 너머가 정원이라는 것이다.
관리가 되진 않아서 조금만 가꾸면 예뻐질 것 같다.
남은 페인트로 지수와 함께 창틀과 창문부터 작업했다.
처음부터 칠했다면 편했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샷시는 외부도 칠해야 해서 청소만 해둔 뒤 겨울이 끝나갈 때 날이 조금 풀린 걸 보고 칠했다.
한 번에 색이 나오지 않아서 하루 동안 세 번을 나눠 칠했다.
손을 댈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와서 뿌듯했다.
시간을 들일수록 공간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봄, 우수가 되기 며칠 전, 지수가 입춘첩을 사주었다.
가게 벽에 붙여두었다.
가게는 아직인데, 어느새 봄이다.
시간이 잘도 간다.
가게를 계약할 때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동양식 화장실이 내내 신경 쓰였다.
세면대도 망가져 있었다.
지수는 나보다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신경 쓰기 싫어서 화장실은 없는 셈 했다.
손님에게도 그렇게 안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바꾸고 싶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고, 임대인 어르신은 이런 곳에 비용을 쓰는 분이 아니라고 이웃 가게에서 알려주었다.
두 가게에 1/N로 화장실을 고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여쭤보았다.
해보면 좋겠다고 하셔서 임대인 어르신의 따님께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다.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들어주셔서 바로 진행했다.
작업은 이웃 가게(수선집) 사장님이 잘 아시는 분께 부탁드렸다.
처음부터 저렴하게 견적을 내주셔서 모두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변기와 세면대를 교체하고, 하시는 김에 바닥 타일도 바꿔주셨다.
양생하는 시간이 있어서 이틀 걸렸고, 이어서 하루는 그대로 건조했다.
또, 가게 외부에 깨진 하수관도 교체 부탁드렸다.
아주 깔끔하게 시공되었다.
모두가 만족했다.
지수가 기념으로 물청소를 했다.
벽의 묵은 때를 지우고 나니 화장실이 정말 쾌적해졌다.
휴지걸이를 사서 달고, 휴지통도 바꿨다.
스피커는 창고에서 가게로 마음을 바꾼 뒤부터 알아봤다.
흰색이나 밝은 나무 인클로저 제품을 알아보다가 제네렉으로 결정했다.
월마운트를 쓰면 벽에도 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검정 중고 매물은 여러 번 봤지만, 흰색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1월 새 제품 가격 인상이 이뤄졌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도 놓쳤기 때문에 인상된 가격엔 절대 사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몇 개월이 지났고,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초조했다.
구글에서 아직 가격 인상을 하지 않는 판매처를 발견했다.
결제 취소가 되어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구매했는데, 정말 배송되었다.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가격이 최신화 되어있었다.
월마운트도 상당히 고가였다.
필요하니 사야지.
나머지 장비는 언젠가 가게를 하면 쓰려고 사둔 소니 제품들과 집에서 쓰던 턴테이블이다.
턴테이블은 연신내로 이사 온 뒤로 자리가 없어서 사용을 못 했다.
케이블도 쓰던 것을 쓰고, 스피커 케이블만 벽과 같은 색으로 맞추기 위해 주문 제작했다.
전기 공사 전에 이런 것들을 미리 확정해 두면 더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수가 과자를 구울 수 있는 오븐을 알아봤다.
중고 제품은 사용감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했다.
다만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어딘가에 올려두기 어렵고 내려놓아야 했다.
자리는 무인양품 선반 아래 한 군데뿐이었다.
앞으로 튀어나오더라도 최선이다.
작은 제품도 알아보던 중 지수가 전에 일했던 카페의 사장님께서 지수에게 선물로 사용하시던 오븐을 주셨다.
하루 차를 빌려 오븐을 가져와 설치했다.
선물 받은 제품을 써보면서 새 제품을 천천히 사기로 했다.
조명은 소일의 현진 님이 골라주셨다.
빈티지와 엔틱에 해박하고, 예리한 미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과 선택을 믿어왔다.
조명뿐 아니라 이 방면에서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여쭤보면 이미 같은 고민 해보셨거나 답을 알고 계신다.
확실히 공간의 빛이 바뀌니 살아나는 느낌이다.
조명과 맞는 전구 몇 가지를 사서 테스트해 보고 최종 결정을 했다.
가구는 예전부터 파사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었다.
넓은 집에 살게 되면 부탁드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넓은 집에 사는 미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게를 하기로 하면서 부탁드릴 수 있게 되었다.
가을에 필요한 가구들을 말씀드리고 조금씩 사이즈를 수정하고 추가하면서 봄에 배송받았다.
디자인은 사장님의 평소 스타일대로 부탁드렸다.
정해진 것이 없어서 더 부담 되실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설치가 필요한 가구도 있어서 하루는 키위새 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다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가구 외에도 정돈이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손봐주셨다.
집에서 빛을 못 보고 있던 그림도 벽에 걸었고, 작은 간판도 선물로 만들어주셨다.
오디오를 올려둘 선반도.
좋아하던 소일과 파프리카의 혼이 담긴 가게가 완성되었다.
건물 벽에는 크고 작은 오래된 간판이 달려있다.
전전가게의 것으로, 보기에 좋지 않아서 언젠가는 떼어내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볼트만 풀면 간단히 떼어낼 수 있는 구조인 건 알겠는데, 무게가 가늠 안 되었고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옆 가게 사장님(성경김)께서 탑차를 아래 대줄 테니 올라가서 떼보라고 하셨다.
사장님의 도움으로 차 위에 올라왔다.
통째로 떼어내지 말고 안전하게 분해를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지붕에 올라서 위쪽을, 사장님은 사다리를 놓고 아래쪽을 분해했다.
간판의 구조를 처음 알았다.
모두 떼어내고 나니 건물이 깔끔해졌다.
이렇게 또 이웃의 도움을 받는다.
실외기가 가게 전면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옆으로 돌려놓았다.
벽에 거는 것도 생각해 봤으나, 김가게에 차양을 설치할 때도 어르신이 엄청나게 반대하셨다고 해서 걱정했다.
마침, 아버지가 출입할 때 보면 한말씀하실 것 같다고 어르신의 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벽에 걸어도 될지 여쭤봤는데 그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바로 걸겠다고 말씀드렸다.
수선집 사장님께서 맞은편 건물에 에어컨 기사님 살고 계신 걸 알려주셔서 그 자리에서 연결해 주셨다.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지내시는 것 같다.
아무리 작은 가게여도 음료를 팔기로 한 이상 냉장고는 필요하다.
산업용 냉장고는 들어갈 자리도 없고 어울리지 않아서 가정용 냉장고를 찾아봤다.
마음 같아선 무인양품 냉장고를 두고 싶었지만, 돈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마음을 접었다.
가정용 냉장고 중 옆면까지 하얀 제품을 찾아서 구매했는데, 그 색상만 발송까지 1개월도 더 걸린다는 것이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테스트로 음료를 제조하면서 얼음 틀에 얼음을 얼려 사용하려는 계획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제빙기 위치는 싱크대가 최선이었고, 아래 넣을 수 있는 제품을 알아봤다.
다행히 다리를 제거하면 들어가는 제품이 있다.
얼음을 꺼낼 때 조금 불편하긴 해도 불가능하진 않다.
청소할 때는 꽤 고생할 것 같다.
셀프설치를 위해 필요한 부속과 제품을 주문했다.
배송받은 제빙기가 찌그러진 채 도착해서 교환받기로 했다.
오래 기다린 냉장고가 찌그러진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냉장고도 제빙기도 없는 상태다.
파사장님의 가구처럼 승미 님의 작품도 언젠가 공간에 두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겼다.
창문을 가릴 수 있는 천을 의뢰하기 위해 승미 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수는 코스터와 앞치마를 추가로 부탁드렸다.
크기뿐 아니라 천의 종류, 조각의 크기나 개수, 갈라짐 여부와 위치, 마감 방식 등 선택지가 많았다.
예시 사진을 보여주셔서 도움이 되었다.
아무렴 승미 님의 작품이면 어떤 형태든 예쁠 것 같다.
지인들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지수와 함께 장장 8개월의 준비를 마치고 문 여는 날을 앞두고 있다.
많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사야 할 물건이 많다.
완벽하게 준비되는 날은 없을 것 같아서 5월 21일 소만을 문 여는 날로 정했다.
올해의 소만은 음력 식목일이기도 하다.
수관기피와 닮은 날, 많이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그것대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참 복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받은 만큼 천천히 보답하면서 잘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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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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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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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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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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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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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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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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