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메일함에 메일이 도착하면 휴대폰 화면에 알림이 뜬다.
보낸 사람과 제목과 내용이 몇 줄 보인다.
보통 수 시간 내에 회신하고, 일부 메일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며칠 걸리기도 한다.
8월 말에는 파니욜로 상의 추가 공연 장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매진이 된 덕분에 한시름 놓고, 하려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주에 동네 부동산 명함을 다 모았다.
'안녕하세요, 피달소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이름이 주는 설렘이 있다.
어떤 느낌으로 연주하는 음악가인지 알고 있어서 단숨에 메일을 읽었다.
봄에 하시모토 히데유키 상의 공연을 관람하셨고, 겨울 무렵 작은 공연을 계획 중 수관기피가 떠올랐다고 하셨다.
올해 처음 받은 공연 제안이었다.
잘 정리된 소개를 읽고, 답신으로 내 소개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음악가 쪽보다 내 쪽이 알려진 정보가 없으니, 서로가 정보를 갖고 시작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내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것 같았다.
12월 중 연말 전에 지방에서 N회 공연을 목표로, 자세한 이야기는 며칠 뒤에 만나서 나누기로 했다.
메일에서 느껴지는 배려심과 온도가 좋았다.
미리 알아보고 정리하신 카페 중 더 조용해 보이는 곳에서 만났다.
그동안 발매된 CD와 굿즈를 선물로 주셨다.
지브리의 라이센스를 받아 제작한 음반 이야기가 궁금해서 여쭤봤고, 예상대로 난관이 많은 프로젝트였다.
나는 지난 공연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단독공연은 서울에서 해왔기 때문에 지방에 거주하시는 관객분들이 늘 서울로 와주셨다고 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관객분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대전과 아래 지방에서 공연을 열고 싶다고 하셨다.
피아노 렌탈은 수빈 님이, 장소는 내가 알아보기로 했다.
지방 공연은 울산의 파프리카와 전주의 백일몽에서 해 본 것이 전부여서,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대전은 바로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지만,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장소가 반짝 떠올랐다.
어쩌면 장소를 빨리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일 동안 매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장소, 주제, 일정 등이 정해졌다.
12월 5일이 정규 1집 발매 1주년이라 그때로 마음이 간다고 하셨다. 의미 있는 날짜여서 좋다.
경상도는 부산의 몇 장소를 알아보고, 경주도 생각해 봤지만, 투어의 그림을 파프리카를 보고 그리셨다고 하셔서 파프리카로 정했다.
전라도는 전주에서 생각한 몇 장소 중에 연락드려보기로, 대전은 추천 드린 '한쪽가게'가 좋다고 하셔서 나경 님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메일을 드렸다.
동선은 대전 - 울산 - 전주 순으로 금/토/일 공연이다.
제목은 작년 여름에 열린 '여름의 피아노' 공연에서 이어지는 느낌으로 '겨울의 피아노'라는 제목을 붙여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정규1집에 있는 겨울 곡과 새 앨범에 실릴 뮤트 피아노곡을 연주할 예정이라 계절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웰컴 드링크를 한 잔씩 제공하면, 관객분들께도 좋고 카페에 도움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여쭤보기로 했다.
나경 님으로부터 기쁜 회신을 받았다.
저녁에 보낸 메일임에도 금방 답장받아서 자정까지 연락을 이어갔다.
여쭤본 것과 필요한 것 모두 구체적으로 답을 주시고, 준비 가능하다고 해주셔서 정말 든든했다.
더 나아가 필요할 것 같은 부분까지 먼저 체크해 주셨다.
믿고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았다.
아마도 수빈 님이 '여름의 피아노'를 준비하고 계셨을 때쯤, 나경 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음반 유통을 한다는 게시물만 올려두고, 적극적인 영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독립 서점에서 취급되기를 내심 바라 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음반 취급 문의를 해 준 서점이 한쪽가게였다.
공간의 느낌도 메일도 따뜻해서 기뻤다.
음반을 위한 자리까지 만들어 주셔서 뵙고 인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되었다.
이번 기회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수빈 님도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날짜를 정한 뒤 기차를 예매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KTX로 1시간이 걸리지 않고, 한쪽가게는 대전 KTX 역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동네에 있다.
가게의 위치가 동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은 나경 님은 어떤 분일까.
인사를 나눈 순간, 메일에서 느꼈던 온기가 여과 없이 피부에 닿았다.
표현하자면 오렌지빛의 다정함이었다.
동화를 짓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마음은 녹고 정화되었다.
나경 님과 경민 님께 드려야 하는 고마움을 한가득 받았다.
더 나아가 공연 날의 기록을 남기고 계절에 어울리는 뱅쇼를 준비하신다며, 두 분의 일처럼 눈을 반짝이셨다.
공연을 위해 가구를 정리하고, 부족한 의자를 구해야 하는 것도 맡겨달라고 하셨다.
피아노의 위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민하는 것보다 좋은 위치를 제안해 주셔서 그곳으로 정했다.
시작도 전에 너무나 많은 걸 받았다.
뭐든 잘될 것 같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내내 따뜻했다.
전주는 새로운 장소를 섭외해야 해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수빈 님과 이야기를 정리하고 '매튜'에 연락해 보기로 했다.
공간의 규모와 분위기가 좋았고, 1층이라 피아노 운반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수빈 님과 내 소개를 하고, 계획 중인 공연의 내용과 타임테이블을 전했다.
매우 긍정적인 회신과 함께 기대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몇 가지 확인 사항과 조율을 거쳐, 전주 공연도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10월 초에는 긴 추석 연휴가 있고, 말에는 수빈 님도 나도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포스터나 안내문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중순에 정리했다.
포스터는 건반으로 집과 숲을 표현하여 수빈 님께 선택을 부탁드렸다.
그 뒤로 폰트, 위치, 비율 조정을 거쳐 완성했다.
부족한 실력을 봐주셔서 다행이다.
매튜도 공연 전에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사전에 공간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되고, 공연 때 처음 만나는 자리가 되면 어색하고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 같아서다.
가장 빠른 방문 가능일은 티켓을 오픈하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KTX 말고 수빈 님의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에 댁 근처 역에서 만나, 전주로 향했다.
투어 때도 대중교통이 아닌 수빈 님의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기차와 버스 타고 다녔기 때문에 이번 투어는 로드 트립같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전날 지수가 구운 피낭시에와 함께 커피타임을 가졌다.
수빈 님은 단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고 했다.
이건 투어를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관객분들이 다양하고 많은 디저트를 선물하셨다.
투어마다 아티스트의 알러지 여부나 피하는 음식도 사전에 확인하는데, 수빈 님은 공연을 앞두고 밀가루가 주가 되는 음식(특히 면류)을 조심한다고 하셨다.
매튜 뒤에서 웅빈 님을 만났다.
웅빈 님은 리액션도 크고, 사근사근한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카페는 향기롭고 활기찼다.
공간이 넓어서 창가에서 피아노를 띄워도 좌석을 충분히 배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놓인 가구는 모두 옮길 수 있다고 하셨다.
웅빈 님께서 점심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셨다.
전주다운 식당에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현대옥'이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현대옥은 여러 곳에 있지만, 남부시장점이 가장 맛있다고 하셨다.
메뉴는 단일 메뉴, 오징어 추가 여부와 맵기만 선택하면 된다.
얼마 전 '삼백집'에서 먹은 것과는 다른 비주얼이었다.
바로 먹기 좋은 온도에 적당한 맵기여서 금세 비웠다.
식당을 나와서는 호떡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다.
집 앞 시장에서 자주 사 먹는다고 말씀드렸다.
바로 근처에 정말 맛있는 호떡집이 있으니 가자고 하셨다.
오늘을 위해 미리 생각해 두신 코스가 있었다.
사실 메뉴도 정해져 있었다.
세 가지 호떡 중 치즈 호떡을 골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터렉티브 요소도 있었다.
그 뒤엔 경기전 내곽을 따라 산책하고, '평화와평화 좋은주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때 카드를 잃어버리셨는데, 찾으셨는지 모르겠다.
웅빈 님은 매튜 말고도 로스터리를 다른 동료와 함께하고 있으며, 평화와평화에 원두 납품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다음 행선지는 '바이아커피스토어'로 이어진다.
탄탄한 구성이었다.
그전에 경기전에서 내가 이야기를 꺼낸 '후로기 오피스'도 들러주셨다.
전부터 궁금했던 백강현 님의 가게로, 성수의 '스카프'를 경험한 이후 궁금증이 더 커졌다.
'매튜'와 '바이아커피스토어'도 백강현 님의 손을 거쳤다.
양단을 섭렵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현진 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인으로 운영하는 시간이라 누군가를 만나지는 못하고 금방 둘러보고 나왔다.
그 잠깐에 일생 동안 본 배용준보다 많은 배용준을 봤다.
봤다기보다는 배용준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을 뒤로하고 원래 경로로 돌아왔다.
바이아커피스토어는 중심 상권에 있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지수가 근처에서 카페를 찾다가 휴무일이라고 아쉬워한 곳이었다.
쑥이 들어간 음료메뉴도 있어서 반가웠다.
미숫가루, 쑥, 오미자 이런 것들을 어째서 점점 찾게 되는지...
웅빈 님의 부탁으로 몇 종류의 커피를 조금씩 마셔볼 수 있었다.
아직 커피의 맛을 몰라서 찾아 마시지는 않지만, 이날 마신 커피는 모두 쓴맛 없이 좋았다.
우리의 자리는 바 좌석이었는데, 구조상 바이아의 석원 님과 친밀한 거리가 형성된다.
석원 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시고 질문도 해주셨다.
젠틀한 바리스타 같다고 해야 할까.
지수를 위해 소포장 된 원두를 사 갔다. (후기는 매우 좋았다.)
업무를 이유로 전주에 왔다가 웅빈 님이 준비하신 패키지여행을 즐기고 돌아왔다.
지방에 가면 서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끈끈한 정이 있다.
다들 뭔가 챙겨주고 해주려고 하셔서 항상 배부르고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저녁에 시작된 예매도 빠르게 절반이 채워지면서 좋은 흐름을 만들었다.
수빈 님의 말씀대로 대전에는 팬 분들이 많이 계셨는지, 바로 매진되었다.
그 뒤로 전주와 울산도 차례로 매진되었다.
중간에 취소와 예매가 반복되었지만, 대전은 굳건했다.
울산 티켓을 마지막으로 예매하신 분은 일본에서 오시는 관객인데, 올해 올콘 이라고 하셨다.
공연을 보러 누군가가 해외에서 와준다니, 그것도 한 번도 빠짐없이.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다.
잘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받은 친절은 오래 기억되니까.
투어 첫날, 수빈 님댁에서 가까운 역에서 만났다.
전날 저녁부터 많은 눈이 내려서 일부 지역은 도로가 마비되기도 했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나왔다가 돌아가는 가는 길에 애를 먹었고, 수빈 님은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고 했다.
오늘은 목적지가 아주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장시간 운전을 하면 졸릴 때가 있어서 걱정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수빈 님은 군산에 본가가 있어서 장거리 운전이 익숙하다고 하셨다.
중간에 휴게소가 없어서 대전까지 왔다.
한쪽가게에 가기 전에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깔끔하고 푸짐한 한식당이었다.
마카로니 샐러드가 나오는 식당은 많지만, 이 집은 연어 샐러드가 나온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한쪽가게로 향했다.
나경 님이 가게를 임시 휴무일로 정하셔서 일찍 와도 좋다고 하셨다.
가구는 모두 정리되어 있었고, 의자도 놓여있었다.
두 분이 고생하셨을 걸 알아서 죄송하고, 우리를 생각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피아노 도착까지 시간이 남아서 커피 타임을 가졌다.
나경 님과 경민 님은 낮에 커피를 마시는 게 오랜만이라고 하셨다.
보통은 아침에 마신다고 하셨다.
수빈 님도 하루에 커피 한 잔은 필요했고, 이후의 커피는 디카페인을 드신다.
가게 밖에는 포스터를 붙이고, 안에는 따로 준비해 주신 빔프로젝터로 포스터를 띄웠다.
피아노가 도착했다.
나경 님과 경민 님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가게 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록하셨다.
상상만 하던 것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나무 마루 위로 조심조심 피아노가 올라갔다.
방향을 사선으로 틀어서 객석에서 옆모습도 보이게끔 했다.
액자 안에 피아노가 들어온 것처럼 집중되었다.
최적의 위치였다.
수빈 님은 피아노를 확인하고, 연주를 하면서 피아노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받은 피아노의 생산번호는 600만 번대로, 2010년 대부터 생산된 피아노라고 했다.
리허설 동안 경민 님은 조명을 조정하고, 다양한 구도에서 촬영하셨다.
9월에 뵈었을 때 촬영을 해보신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본격적이었고, 멋지고 좋은 느낌이 든 결과물이 나왔다.
음원으로 듣던 곡을 라이브로 들으니 더 몰입된다.
본 공연에 앞서 미리 보고 듣는 연주라 특별하다.
의자에는 수빈 님이 제작한 노트를 한 권씩 두었다.
서점인 한쪽가게와도 잘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수빈 님이 손이 차고 땀이 난다고 하셨다.
겨울이기도 하고, 공연을 앞둔 몸에 긴장감이 돌아서 그런 것 같다.
지수가 챙겨준 핫팩으로 부족해서 경민 님이 장 보러 갔다 오시는 길에 큰 핫팩을 사다 주셨다.
나경 님은 물주머니를 데워주셨다.
가까이에서 음악가들의 공연을 도우며 느낀 건 그들 모두 저마다의 긴장과 떨림이 있다는 것이다.
무대 경험이 많음에도 말이다.
그건 잘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오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잘 해낼 거라는 것을 안다.
관객 입장 시간이 가까워지자, 경민 님은 웰컴 드링크로 만든 뱅쇼를 데우셨다.
말고도 시원한 이히브루의 맥주도 준비되어서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었다.
뱅쇼는 손이 많이 가서 이틀 전부터 신경 쓰셨다고 했다.
마침, 다른 날보다 추워서 잘 어울렸다.
한 잔 주셔서 마셨는데, 금세 얼굴이 화끈거렸다.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맛이다.
나경 님과 경민 님이 관객 입장을 도와주셔서 차근차근 안내할 수 있었다.
정시가 되자 수빈 님이 등장하여 즉흥연주로 인사 후 멘트 진행을 하셨다.
한두 곡마다 멘트가 있어서, 중간에 도착한 관객을 자리로 안내하기에도 편했다.
공연 때는 곡 설명을 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사람에 따라 곡 설명을 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음반에도 라이너 노트가 있는 걸 좋아해서,
연주 직후 연주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매우 좋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듣는 도슨트인데, 원작자가 직접 진행하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셋리스트도 재미있었다.
터널의 시작과 끝, 순환하는 계절, 짝을 이루는 곡.
몸은 빛을 향하고, 손은 음악이라는 언어로 긍정의 메시지를 자아낸다.
음악가가 보는 풍경이 듣는 이의 마음에도 선명하게 맺힌다.
수빈 님의 음악에 위로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리지날 곡 외에도 겨울 분위기를 더하는 커버 곡과 캐럴도 들려주셨다.
분위기는 관객분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콘서트장을 방불케했다.
공연이 종료된 후에는 팬 사인회 현장처럼 느껴졌다.
다들 노트에 사인받으시곤, 가져온 선물을 수빈 님께 드렸다.
CD는 대부분 갖고 계실 거라고 하셨는데, 맞았다.
모두 수빈 님이 단것을 좋아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다.
수빈 님은 이전에 만난 관객분들을 기억하고 계셨다.
책장의 책 페이지를 넘기면 음악이 흐를 것 같았다.
맛동산을 만들 때, 과자 반죽에 국악을 들려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관객이 퇴장한 뒤, 남은 넷은 고생했다고 말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나경 님은 공연이 끝나갈 무렵에 사람들의 얼굴을 봤는데, 행복해 보여서 정말 좋았다고 하셨다.
음반을 선물하고 싶은 분이 있고, 한쪽가게에서도 CD를 두 장씩 소개하고 싶다고 하셨다.
잠시 테이블을 두고, 디저트를 나눠 먹으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 준비를 하면서 주고받은 메일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하셨다.
두 분이 섬세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자연스럽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수빈 님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편이 아니어서, 투어 때 생기는 강제성을 활용해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어보려 했다.
눈을 감기 전까진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역시나 실패했고 약속한 시각에 맞춰 로비에서 수빈 님을 만났다.
잠을 별로 못 주무시기도 했고, 공연으로 인해 피곤해서 일찍 주무셨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각성이 되어 늦게 주무셨다고 했다.
가는 길에는 휴게소에서 주유도 하고 카페도 들렀다.
어제 공연에서 수빈 님이 관객분들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고 나눈 모습이 생각나서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지 여쭤봤다.
어떤 분은 첫 공연 때부터 지켜봐 주셨다고 했고, 함께 오신 네 관객분들도 오래되었다고 하셨고, 블로그에 항상 댓글을 남겨주셔서 기억하는 분도, 수업을 함께한 제자도, 그의 지인까지도 있었다고 하셨다.
대부분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걸음 해주셨던 분들이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공연이 끝나면 빨리 철수해야 해서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공연 이후에 한 분 한 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다음에는 팬 미팅도 하고 포토 카드 같은 굿즈도 만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두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도로 옆에 십리대밭이 펼쳐지자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태화강이 만드는 시야와 강을 따라 보이는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수빈 님은 지금까지 울산과 인연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나도 파프리카와 소일이 아니었다면 울산에 갈 일이 없었을 것 같다.
파프리카 앞에는 항상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장님은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매번 조금씩 바뀌는 배치나 물건, 무질서 속 질서가 자유롭고 편안하다.
피아노가 놓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수빈 님은 직접 뜬 수세미를 파사장님께 선물했다.
수세미를 만드는 것이 수빈 님의 심신과 스트레스 관리법이라고 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관객분들께 나눠드릴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울산과 전주 공연 때는 의자마다 수세미를 놓았다.
파사장님이 차와 커피를 내어주셨다.
어제 공연은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나도 이사와 가게 준비는 잘 되어가시는지 여쭤봤다.
말이 나온 김에 수리 중인 집 내부를 보여주셨다.
키사장님, 무락 님, 지원 님이 공연 시작 전까지 차례로 오셨다.
수빈 님은 한쪽에 놓인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어보시곤 내용이 정말 좋다고 하셨다.
나중에 파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선물로 주셨다.
피아노는 2시쯤 도착했다.
이번에는 처음 보는 정말 좋은 의자와 사일런트가 달린 피아노였다.
번호는 200만 번대로 70년대에 생산된 것이라고 하셨다.
건반은 더 힘을 실어서 눌러야 했으나, 톤은 따뜻해서 좋다고 하셨다.
문제는 펠트의 높이를 조절해야 하는데, 사일런트 때문에 간섭이 생겨서 하판이 열리지 않았다.
사장님이 되돌아오셔서 기기를 떼어냈더니, 이번에는 피아노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치라 난감해하셨다.
피아노와 옥신각신한 끝에 다행히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의 피아노는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카페 손님이 계신 시간이라 짧게 소리만 체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은 지났고, 공복으로 저녁까지 있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서 김밥을 먹기로 했다.
파사장님이 자주 사다 주시는 김밥집이 골목 입구에 있어서 포장하러 갔다.
시장에 장 보러 갔으니 30분 뒤에 다시 와달라고 하셨다.
파프리카로 돌아와서 기다리는 동안 수빈 님은 수세미 한 개가 부족하다는 걸 아시곤, 뜨기 시작하셨다.
실과 바늘까지 챙겨오신 줄 몰랐다.
한 개가 만들어지는 데 15분밖에 안 걸린 것 같다.
김밥을 먹고, 파사장님, 무락님과 함께 가구와 물건을 옮겼다.
보통은 장소에 있는 의자 수를 신경 써야 하는데, 파프리카에서는 부족하면 사장님이 직접 만드셔서 걱정이 없다.
의자도 공간을 닮았다.
사장님이 분위기를 연출할 소품과 가구를 피아노 주변에 놓아주셨다.
초를 켜고, 수빈 님은 곡들을 조금씩 연주해 보셨다.
모닥불처럼 따스한 분위기다.
해가 저물면서 분위기는 더 깊고 진해졌다.
관객분들이 하나둘 도착하셨다.
겨울 공연은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는 느낌도 있어서 귀엽고 포근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파랑.
물과 땅이 만나는 지점에 물결이 도착하는 풍경이 그려지는 곡이다.
그 경계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낮은 자리와 높은 자리를 이동한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물결이 일어난다.
부드러운 해머의 움직임도 풍경을 만드는 요소다.
객석의 분위기는 평소처럼 조용하고 수줍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각자 생각해 둔 말을 수빈 님께 전하시는 모습이었다.
지원 님도 공연 시작 전부터 준비하신 선물을 수빈 님께 드렸다.
내게 수빈 님은 F인지 T인지 궁금하다고 하셔서, 직접 여쭤보라고 말씀드렸는데, 초면에 실례 같다고 말씀하시곤 떠나셨다.
몇 분만 더 계셨다면 짐작하실 수 있었는데 말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짐을 챙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내일은 파프리카에 들르지 않고 전주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금이 올해 마지막 파프리카다.
올해도 세 차례나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니, 해를 거듭할수록 추억이 쌓인다.
내년에는 골목에 새로운 가게가 생길 것을 기대한다.
파사장님과 저녁 메뉴를 고르다가 늘 가던 전집에 갔다.
수빈 님께도 앞서 전집 이야기를 드려서 궁금해하셨다.
공연을 마치고, 준비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마무리하는 시간이 좋다.
이때 말고는 이야기할 시간이 없으니까.
공연 마지막에 파사장님이 하셨던 말씀 중, 그곳에 있을 뿐인 것들에게 우리가 멋대로 위로받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산과 바다와 숲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찾아가서 보고 위로받거나 좋은 감정을 갖는다.
자연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멋대로 좋게 해석한다.
누구나 자연을 좋아한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종교 같기도 하다.
수빈 님의 음악도 그렇다.
숙소 앞에서 파사장님과 헤어졌다.
날이 풀리기도 했지만, 울산만 오면 마음도 풀려서 추웠던 적이 없다.
3일 내내 날씨가 좋다.
적당한 시간에 체크아웃하고 강변 주차장으로 향했다.
전주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고, 피아노 도착은 4시여서 여유가 있었다.
공업탑 로터리에 진입할 때, 수빈 님이 주차장 앞 강변을 걸어볼걸 그랬다고 말씀하셨다.
시간도 있고 십리대밭이 근처니까 가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전날 파니 상과도 그곳을 걸었던 이야기를 해드렸다.
살면서 가 본 대나무 숲은 십리대밭이 유일해서 비교 대상은 없지만, 지역의 자랑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좋은 장소다.
강과 숲 사이로 걷다가 입구가 나오면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숲에 모기가 참 많았는데, 겨울이라 벌레는 없고 그늘져서 공기가 밖보다 차가웠다.
하늘이 조각조각 보였고, 햇살이 대나무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수빈 님도 이런 대나무 숲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산책을 하시는지 여쭤봤다.
반려견을 잘 돌보기 위해 하루에 다섯 번 산책한다고 하셨다.
어릴 적 본가에서는 강아지를 빨리 산책 시키고 돌아오는 걸 신경썼는데,
언젠가 본가에 내려가 큰 공원에 갔을 때는 어릴 적과 달리 주변 풍경을 새로 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지방에 공연을 가도 가급적 근처를 돌아본다고 하셨다.
상쾌한 오전 산책이었다.
공기도 좋았지만, 평소에 오전부터 움직이는 일이 잘 없고, 이른 시간 산책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하루지만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산책하기를 잘했다.
점심은 답사 때부터 정해둔 전주의 식당에서 먹으려 했으나 임시휴무라 아쉬웠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식사하고 음료를 사서 출발했다.
내년 계획이 있는지 여쭤봤다.
수빈 님은 여름이 되기 전에 일본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다.
이미 몇몇 장소를 알고 계셨다.
연말에 새 앨범 재녹음이 있어서, 새해에 구체적인 준비를 한다고 하셨다.
나도 지금까지 일본 음악가의 공연을 한국에서 열어 왔기 때문에, 반대로 한국 음악가의 공연을 일본에서 열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꿈꿔왔다.
그 생각은 1년 반 전에 지원사업 준비를 하면서부터였다.
수관기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때다.
그 고민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아버지는 돈은 좇으면 달아난다고 하셨다.
좇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대신 재미를 좇는다.
재미를 찾아 학교를 나왔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앞으로의 수관기피는 지금과 같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돌아보면 운이 따르고,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내년이 올해 같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주에 도착했다.
웅빈 님이 당일 매튜 휴무를 한다고 알려주셔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모두가 가구를 치우고 바닥부터 유리창까지 대청소하고 계셨다.
가장 깨끗한 상태로 공간을 내어주시려고, 주말 영업을 쉬실 줄은 몰랐다.
죄송스럽고도 무척 감사했다.
추천해 주신 근처 카페에 다녀왔다.
직원 한 분이 몇 달 동안 테스트 거쳐 개발한 치즈케이크라며, 한 조각씩 주셨다.
곧 매장에서도 판매할 거라고 하셨다.
답사 때, 말씀하신 케이크였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메뉴 개발을 하는 이상적인 구조가 멋졌다.
비워진 공간에 피아노가 도착했고, 수빈님은 소리와 건반 상태를 체크했다.
번호는 400만 번대, 이로써 시대별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다.
이번 피아노는 전체적으로 좋다고 하셨다.
펠트 높이도 원하는 대로 거의 맞춰져 있었다.
수빈 님이 연주를 해보시는 동안 의자를 놓았다.
매튜에도 다양한 의자가 있어서 배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웅빈 님의 제안으로 매장 앞에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웰컴 드링크는 무엇인지 여쭤봤다.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메뉴면 좋다고 말씀드렸고, 그건 저희 전문이라 생각 해보고 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따뜻한 작두콩차와 시원한 딸기 밀크티를 준비해 주셨다.
즉석에서 익숙하다는 듯이 빠르게 결정 후 세팅되었다.
그 외에도 물과 컵, 행거를 준비해 주셨다.
안내문을 만들어 패드에 띄워주셨고, 공연 전후 BGM을 쉽게 제어할 수 있게 준비해 주셨다.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주시는 세심함에 감동했다.
관객 입장 때에는 입구에서 웰컴 드링크를 선택하는 관객의 입 모양을 바에서 주시하고, 바로바로 음료를 내어주셨다.
매튜의 구성원 모두가 여섯 번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부탁드리기 전에 필요한 것이 먼저 준비되어서 미소가 지어졌다.
평상시 매장도 시계 무브먼트처럼 손발이 기분 좋게 맞아 돌아갈 것 같았다.
공연은 정시에 맞춰 시작되었고, 나는 입구 쪽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관객분들을 기다리면서 공연을 관람했다.
웅빈 님과 매튜의 식구분들도 바 안에서 공연에 집중하고 계셨다.
마지막 공연이라 지난 이틀을 돌아보면서, 시간이 금방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공연 시간이 체감상 짧게 느껴져서 피아노와 시간 모두를 달린다는 표현이 잘 맞았다.
모든 연주가 끝난 뒤, 관객분들이 퇴장했다.
마지막에는 수빈 님의 가족분들께 인사드렸다.
전주 티켓을 따로 예매하셨다고 사전에 수빈 님께 듣긴 했으나, 잊고 있다가 공연 중에 생각났다.
떠나시기 전에 수빈 님이 이야기해 주셔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수빈 님의 공연을 보시는 게 거의 처음이라고 하셨다.
수빈 님은 객석에 있는 가족을 보면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안 보려 했는데, 밝은 쪽에 계셔서 잘 보였다고 하셨다.
모두가 퇴장하고, 온기와 빈 의자와 관계자만 남았다.
꽉 차 있던 공간이 텅 비면서 다시 넓게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정리를 했다.
매튜는 내일도 워크숍으로 인해 휴무라고 하셨다.
모두와 함께 서울에서 카페를 돌아볼 예정이라고 하셨다.
피아노는 다음 날 오전에 철수하기로 하여, 테이블과 의자는 일단 두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역으로 향했다.
수빈 님은 이제 본가에 가면 긴장이 다 풀릴 것 같다고 하셨다.
동시에 빠르게 지나간 3일이었고, 지방을 투어한 경험이 좋았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아는 관객 분들이 계셨다고 했다.
바쁘게 살아오신 덕분에 전국에 팬이 있어서 어디서든 공연을 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제주도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전주역에서 수빈 님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번 투어에서 자가용의 편리함을 느꼈고, 운전부터 퍼포먼스까지 수빈 님이 다 하셔서 양광을 누렸다.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나를 대신하고 싶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해봤다.
음악가의 팬으로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기회를 만난 것에 감사했다.
투어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장소 및 관계자,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연말,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Set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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