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s Truly, hemming

2024.12.21




회사에 다닐 때 참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동료들과 음악을 공유하면서 좋아하는 장르를 찾아갔다.

퇴근 시간이 지난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는 게 작은 행복이었다.

hemming 님의 음악이 우연히 다음 곡으로 재생된 것도 이때다.

눈 밟는 소리 뒤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보통은 음악을 BGM처럼 흘려듣지만, 의식한 순간 누구의 곡인지 알고 싶어서 재생창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제목은 윤희에게.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앨범 전체를 들어본다.

중간에 분위기가 전환되는 곡이 없길 바랐다.

다행히 모든 곡이 좋았다.

피지컬 앨범이 있는지 찾아봤다.

몇 달 전 올라온 CD 예약 판매 게시물을 봤다.

판매 기간이 지났지만 문의해서 4장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때가 4월이다.
6개월 뒤에 퇴사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달이기도 하다.


시간이 바쁘게 흘러 퇴사를 한 달 앞두고 당장의 미래를 고민했다.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hemming 님의 CD를 꼭 취급하고 싶어서 문의했다.

아쉽게도 판매할 만큼의 수량이 없었고, 재생산하게 된다면 디자인도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이 외에 제작에 관한 경험을 자세히 공유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몇 차례 디자인을 수정하면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어느 시점에 끊겼다.


1년이 지났다.

작년에 구매한 CD를 다시 구매하고 싶어서 문의했다.

어느새 나는 다섯 번째 팝업을 앞두고 있었고, hemming 님은 두 번째 EP를 준비중이었다.

팝업에 와주신 덕분에 처음으로 뵙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듬해인 올해 2월에는 작년 팝업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켜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음반 리디자인 및 재발매를 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2년 전 소망을 이룰 생각에 기뻤다.

마침, 가까이 살고 있어서 미팅도 여러 차례 가능했다.

2월부터 5월까지 서로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5월 말 공연에서 선보일 두 EP를 CD로 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제작하는 건 참 특별한 경험이다.

디자인 경력이 없는 내게는 더욱.


공연 이후로는 종종 만나서 근황을 공유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를 사귄 기분이다.

여름에는 연말 공연을 함께 준비해 보기로 했다.

5월 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을 부탁하셨다.

나는 음악을 모르기 때문에 기술적인 도움을 드릴 순 없지만, 수관기피를 티켓 판매 사이트로 쓸 수 있었고, 포스터 제작도 가능했다.

함께 공연할 만한 장소를 찾고 방문도 했다.

hemming 님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포스터가 먼저 나왔고,  11월에는 굿즈 제작을 희망 하셔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제작 과정에는 늘 괴로움이 함께한다.

생각을 시각화하는 건 어렵고, 실물로 만드는 건 더 어렵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가민가 하면서 작업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할 걸 알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안다.

해내고 난 뒤엔 뿌듯할 것도.

그걸 생각하니 설레고 즐거웠다.


편지지는 낱장 카드 형태로 만들었다.

만들기로 결정하자마자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표현하고 싶었다.

디자인은 여러 번 수정되었다.

구매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었으면 해서 hemming 님께 부탁드렸다.

편지를 읽고 쓸 때 분위기를 더하고, 소장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음악가의 곡으로도 편지지를 제작하여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


카세트는 전부터 몇 개를 모으면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정해진 크기 안에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뽑을 수 있다는 점과 시대에서 잊힌 물건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관심 있게 본 카세트 플레이어도 있고, 프랑스 본사와 소통하면서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요건을 검토하고 가이드를 주기도 했다.

패키지 안에는 내가 번역한 사용자 설명서가 들어있고, 제품 하단 A/S 문의처에 내 연락처가 프린팅되어 있다.

카세트 제작은 캐나다에 맡겼다.

갖고 있는 카세트 중 하나가 그곳에서 제작된 것 같아서 믿음이 갔다.

십여 가지 선택지를 세세하게 분류해 두어서 선택에 따라 소수점 단위로 단가가 조정되는 신기한 사이트였다.

음원은 hemming 님의 데모, 스케치, 보이스 메모로 구성했다.

정해진 길이에 맞추기 위해 몇 곡은 제외했다.

사진은 hemming 님이 촬영한 것을 사용했다.

곡이 만들어지기 전에 쓰이는 물건이라 잘 어울렸다.

기록을 남기는 지금까지 실물을 받지 못해서 만듦새와 소리가 궁금하다.

생각한 대로 잘 나와주면 좋겠다.


모든 작업이 손을 떠나갔다.

hemming 님은 세션 분들과 공연 전날까지 합주했다.

다행히 준비한 좌석 수 가까이 예매가 되었다.

그럼에도 공연은 수익이 나진 않는다.

hemming 님도 좋아하는 일이라서 공연을 연다.

그런 점이 비슷해서 함께하는 내내 즐거웠다.

돈은 또 벌면 되니까 준비한 만큼 보여주고 즐기면 된다.

몰입하는 관객의 모습을 보면 감정이 벅차오른다.

누군가 시간과 비용을 내고 걸음 해 준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5월 공연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준 세션 분들을 다시 뵙자 지난 기억이 났다.

그날 밴드 공연을 처음 보고, 사람들이 밴드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다.

당시에는 본 공연만 봤지만, 오늘은 일찍 도착해서 음향 세팅과 리허설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전과 다르게 어쿠스틱 셋에 첼로가 추가되어 음원과 똑같이 들렸다.

악기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음악을 맛있게 만들었다.

소리가 모여 한 곡이 되는 게 새삼 신기했다.

한 악기 소리를 집중해서 듣기도 하고, 연주하는 손에 집중하기도 했다.

보이고 들려서 입체적이었다.

같은 곡을 여러 번 진행하면서 앰프와 믹서를 여러 차례 조정했는데, 나는 차이를 못 느꼈다.

음악가는 예민한 감각이 요구된다.


긴 리허설이 끝났다.

의자를 배치하고 나니 굿즈 둘 자리가 없어서 출입구 통로로 옮겼다.

멈춰서 살펴보기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최선이었다.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꽃을 들고 오신 분도, 케이크를 들고 오신 분도 있었다.

다음 굿즈는 포토카드를 해도 될 것 같다.


8시에 맞춰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맨 뒷자리에서 관람했다.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공연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죽여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떨리고 부담이 될지, 소리 없는 응원과 격려가 될지.


공연이 끝나고 초대된 지인 외에도 예매해서 방문한 hemming 님의 친구가 많았다는 걸 알았다.

지방에서 오신 분도, 굿즈를 쓸어간 분도 계셨다.

나라면 친구의 일을 이 정도로 지지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hemming 님의 음악이 좋아서 팬이 되었지만, 지금은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지환 이라는 사람의 팬이 되어 응원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사진 1-2 : @zisu_oo

사진 1-5 : @haengout

Setlist


  1. Architect of My Soul
  2. Intro
  3. Later…
  4. JFK
  5. Ghost of You
  6. New York
  7. Daydreamer
  8. Love Song
  9. Love On Scale
  10. ???(Hidden Track.)
  11. You Can’t Make Sense of Everything
  12. Dream of True Love
  13. I Know It’s Love
  14. I Want You Back!
  15. This Love


sggp

© 2024. sggp All Rights Reserved.



sggp

© 2024. sgg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