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그로브에서 팝업을 마친 지 2주가 된다.
일주일 전에는 정리하는 글을 써서 올렸어야 했는데, 중요한 일이 생겨서 글도 못 쓰고, 음반 소개도 못 하고 있다.
더 늦어지면 기억이 휘발될 것 같다.
그로브는 연희동에 갈 때면 자주 찾는 가게다.
보통, 물건 파는 가게라고 하면 공간 가득 물건을 늘어두지만, 그로브에는 여백이 많다.
볕이 잘 들어서 하얀 공간이 더 깨끗하게 빛나고, 만듦새 좋은 물건이 단정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기분 좋다.
언제 가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인상이 떠오른다.
마음속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 때면 그로브에서 채웠다.
뭐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그로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한결같아서, 그게 좋았다.
때로는 그 모습이 고고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도 이런 가게를 해야지.
마음의 안식처 같은 그로브에서 팝업을 하게된 건 그로브 슬기 님의 제안 덕분이다.
당시 즈미, 사이코 상의 공연을 준비하던 시기라 서울에 장소를 알아보던 중이었고, 때마침 유수 승미 님께서 개인전에 초대해 주셔서 슬기 님과 인사 나눌 수 있었다.
전부터 연락드리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슬기 님께 준비 중인 공연을 말씀드렸다.
그로브에서 해보면 좋겠다고 먼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했다.
덧붙여 팝업까지 해보면 좋겠다고 제안 주셔서 좋다고 말씀드렸다.
팝업을 준비할 때면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고 싶어서 고민한다.
이번에 가장 고민한 부분은 전시 방식이었고, 부자재 고르는 것에만 몇 날 시간을 쏟았다.
선택한 재료는 코르크.
테스트해 보니 전보다 깔끔해서 그로브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앨범 설명은 몇 가지 안을 생각해 두고 미리 출력했다.
다음엔 더 작게 만들어도 될 것 같다.
팝업 세팅하는 날 승미 님도 오셔서 도와주셨다.
어림잡아 3시간이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는데, 세 사람이 4시간 넘게 걸렸다.
디스크와 음반 전시 방식을 논의하고, 가구를 옮겼다.
코르크를 붙이는 간격, 높이를 수정하고 수평을 맞추기 위해 몇 차례 다시 붙였다.
코르크 작업은 슬기 님이, 앨범 설명 작업은 승미 님이 해주셨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한 게 없다.
모두 끝내고 보니 제법 멋진 모습이 되었다.
팝업을 하는 2주 반 동안 처음과 마지막 2일씩 자리를 지켰다.
서서 음악 듣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멋져 보여서 몰래 사진을 남겼다.
수관기피 일은 주로 온라인에서 이뤄져서, 오프라인에서 손님과 대면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다.
긴 시간 여러 앨범을 들어주시는 분이 계실 때, 같이 온 일행에게 음악이 정말 좋다고 권할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
수관기피하길 잘했다.
팝업 세팅, 진행, 철수를 함께해 주신 슬기 님, 승미 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 : @yusu.cra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