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moments in 2023

2023.12.31



비용 걱정이 없다면, 서촌에 매장을 내고 싶었다.

익숙한 동네기도 하고, 한옥과 골목이 많아서 산책하기 좋다.

집집마다 화분이 있고, 산이 가까이에 있으며, 고층 빌딩이 없어서 숨통이 트인다.

기분 좋은 가게도 많다.


서촌에서 두 달 동안 전시를 했다.

내가 준비한 게 거의 없을 정도로, 함께 일했던 동료 두 분이 한 달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해 주셨다.
좋은 감각을 가진 두 사람 덕분에 '한권의 서점'이 음반가게가 되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직접 문을 열고 닫았다.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은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여기는 서점인가요?", "책은 안 파나요?"

서점인데, 책이 보이지 않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조용히 다녀가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뭔가를 찾는 모습이 보이면 먼저 설명드린다.

"이곳은 원래 서점이고, 평소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전시하면서 판매하지만, 연말이라 특별하게 책 대신 음반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연말의 서점에 어울리게 책과 독서, 겨울과 연말을 주제로 20 종의 앨범을 선정해서 전시 중이에요."

"벽면에 있는 앨범 소개를 보시고 궁금한 앨범이 있다면 말씀 주세요. 들어보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릴게요."


앉은 자리에서는 음악 듣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11월부터 12월까지. 가을에서 겨울이 되는 동안 옷이 점점 두꺼워지는 손님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함께 온 일행과 서로의 음악을 바꿔 듣기도 하고, 나중에도 찾아 듣기 위해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처음 듣는 음악인데 좋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프라인 행사를 한다.

편안한 음악과 음반으로 음악 듣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

손님이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고, 음반을 돌려놓고, 이따금 스툴의 나사를 조였다.

마을버스가 서점 앞 정류장에 멈추는 것을 몇 번 의식하고 나면 하늘이 어두워진다.

조용해진 서점에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한권의 서점'이 서촌에서 자리를 지킨 시간도 어느덧 4년 반.

갈수록 서촌에 변화가 빨라진다.

오래된 가게가 사라지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프랜차이즈 간판이 걸릴 때면 속상하다.

'한권의 서점'을 비롯한 특색 있는 가게들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모두의 기억 속 서촌의 순간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포스터 사진 : @minsu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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